김동원 (1916년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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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김동원(1916년)은 대한민국의 연극 배우이자 영화 배우이다. 개성 출생으로 경성에서 성장했으며, 니혼 대학 예술과를 졸업하고 극단 '극연좌'에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. 해방 후 극협, 신협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며 연극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했고,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. 1936년 연극 《소》에 출연한 이후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았으며, 한국 신극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. 2006년 뇌경색으로 사망했으며, 가수 김세환, 前 쌍용그룹 CEO 김덕환, 기타리스트 키이스 킴이 그의 가족이다. 연극 배우 이해랑과 절친한 사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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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동원 (1916년) - [인물]에 관한 문서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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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본 정보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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본명 | 김동혁 |
원어명 | 金東園 |
출생일 | 1916년 11월 14일 |
출생지 |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부 |
사망일 | 2006년 5월 13일 |
사망지 |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|
종교 | 개신교 |
직업 | 연극인, 연극배우, 영화배우, 텔레비전 연기자 |
학력 | 일본 니혼 대학교 예술학과 학사 |
배우자 | 홍순지 |
자녀 | 슬하 3남 (장남 김덕환 (전 기업인) 차남 김진환 삼남 김세환(가수 겸 영화배우) 손자 키이스 킴 (기타리스트, 채프먼 스틱 연주자)) |
활동 기간 | 1932년 ~ 1994년 |
수상 | |
수상 내역 | 제3회 이해랑연극상 명예공로상 |
2. 생애
2. 1. 생애 초기
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하였으며, 지난날 한때 경기도 장단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경성부에서 성장하였다.[2] 1932년 중학교 시절 연극에 첫 입문한 이래 일생을 연극과 영화에 몸담았다.[2]2. 2. 주요 경력
일본 니혼 대학 예술과를 졸업하고, 극예술연구회의 후신인 극단 ‘극연좌(劇硏座)’에서 연기 활동을 시작하였다.[3] 해방 이후에는 ‘극협(劇協)’을 거쳐 ‘신협’의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며 1972년까지 연극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다.[3] 영화 분야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1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였으며, 연극협회 고문을 역임하였다.[3] 1960년대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.[3] 1994년 연극 《이성계의 부동산》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.[3] 2006년 5월 13일 지병인 뇌경색으로 인해 향년 91세로 별세하였다.[3]3. 학력
4. 소속
5. 작품 활동 및 평가
1936년 유치진 작 《소》에 출연한 이후, 무대 연기 면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.[3] 주요 출연 작품으로는 《춘향전》(1938), 《부활》(1941), 《오셀로》(1951), 《맥베스》(1952), 《빌헬름 텔》, 《줄리어스 시저》(1953), 《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》(1956), 《한강은 흐른다》(1959) 등이 있다.[3] 1962년 극단 드라마센터의 창립 공연 작품인 《햄릿》에서 햄릿 역을 맡았고, 1970년 극단 ‘신협’과 독일문화원이 주최한 괴테의 《파우스트》에서 주역을 맡아 세련된 연기를 선보였다.[3] 김동원은 한국 신극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. 특히, 그의 사실주의 연기는 한국 연극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.
6. 가족 관계
7. 인간 관계
참조
[1]
뉴스
銀幕의「스타」들은 藝名의「베일」쓰고
https://newslibrary.[...]
조선일보
1963-08-29
[2]
백과사전
인물
http://encykorea.aks[...]
[3]
서적
글로벌 세계 대백과
김동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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